위대한 작품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술꾼’을 처음 읽었을 때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읽는 내내 1970년 한겨울 밤의 한기 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술집을 헤매다니다 결국 아이도 어른도 아닌 주인공의 신산한 현실을 깨닫고 작품이 주는 절망감에 압도되었다.
단편 술꾼의 작가 최인호님은 고등학교 2학년인 1963년에 신춘 문예 입선한 경력이 있다. 1967년 단편 <견습환자>로 등단하여 197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신문에 연재한 <별들의 고향>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호스티스 문학’이나 쓰는 저질 작가라고 한 때 평단에서 외면당하기도 했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는 무엇일까. 그런 평가가 온당했던 걸까. 유신독재 시기, 전쟁의 상흔이 가득했던 1970년대의 문단은 최인호라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보석 같은 이 작품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지만 내게는 오정희 작가님의 ‘중국인 거리’와 더불어 최고의 작품이다.
술집에서 아버지를 찾는 작은 아이가 있다. 아버지는 없다.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작고 못생긴 아이는 술꾼들의 희롱에도 꿋꿋하게 버티다가 누군가 따라준 술을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잊디 마세요. 우리 아버지 이름 말이야요. 국, 승, 현. 나중에 혹 술집에서 만나더라두 내가 술 먹더란 말 하디 마세요. 정말이야요.
아버지가 갔다는 다음 술집으로 향하는 아이. 그렇게 얻어 마신 술에 이미 취했다.
오늘 못 찾으면 내일 찾아도 되지 않냐는 말에 아이는 오마니가 죽어가는데, 아버지를 찾아오라고 했다고 결연하게 말한다.
술꾼들이 알려주는 곳 어디에도 아버지는 없다. 아이는 이제 술꾼들 몰래 술을 따라 마신다. 젓갈로 탁자를 두드리며 노래까지 부른다.
나이프를 던지는 외팔이 사내에게 위협당하기도 하며 늦은 밤까지 거리의 온갖 술집을 찾아다닌 아이는 잠든 주정뱅이 몸에서 지폐를 훔쳐 이미 영업이 끝난 술집 유리창을 두드린다.
없대두. 너희 애빈 안 왔다니까.
알구 있시오. 그런 것쯤은 알구 있시오.
그럼 뭣 땜에 잠도 안 자고 이러지?
아바진 이제 필요 없시오.
술을 따라준 작부에게 술주정까지 하고 일어선 아이는 태엽 풀린 인형처럼 걸으며 언덕길을 오른다. 언덕 위에는 고아원이 서 있었다.
아이는 아버지와 오래전 헤어진 걸까. 아니면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던 걸까. 아이의 아버지가 있기는 한 걸까.
취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아 현실에 없는 아버지를 핑계로 술집을 전전하는 어린 술꾼.
역설적인 상황과 반전의 연속에 숨 쉬는 걸 잊어버리고 읽었다.
최인호 작가님의 묘사력은 굉장하다.
머리는 기계총의 상흔으로 벽보판처럼 지저분했고, 중국식 소매에서 빠져나온 작은 손은 때에 절어 잘 닦은 탄피처럼 번들거렸다. (아이의 인물 묘사)
지독하게 못생긴 아이의 얼굴 위로 삼십 촉짜리 전등 불빛이 그럴싸한 조명 역할을 했고, 연탄불 위로 타오르는 생선의 비릿한 연기는 술집 안을 연막탄 뿌린 것처럼 부옇게 탈색했다. ( 술집 배경 묘사)
익숙하고 노련한 술꾼들이 누구나 그러하듯 이번 기회로 한 번쯤 절제하리라 작정했을 때, 갑자기 어정쩡해지고 늙어 뵈는 것처럼 순간적인 절망, 슬픔, 비애가 아이의 작은 얼굴을 우울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술집 창문 너머 탁자 위 투명한 유리컵이 빛나고, 껄껄거리는 술꾼들의 떠들썩한 농지거리가 들려오자, 아이의 못생긴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하였다. 참회를 하는 죄수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그는 천천히 술집 문을 잡았다. (심리 묘사)
거리는 어두웠다. 구석구석에서 바람이 불고 하늘은 납색으로 투명했다. (겨울 밤거리 묘사)
캐릭터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솜씨도 굉장하다.
그제서야 안쪽에 앉았던 술꾼들이 그 아이를 발견했다. 구레나룻 기른 사내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술만 취하면 그는 늘 웃었다. 제 여편네가 피난통에 총알 맞아 배에 공기구멍이 휑하니 나서 죽어버렸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웃었고, 자기는 이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웃었다. 나이 오십 되기 전에 자살하겠다면서도 웃었다. 도대체가 그 사내는 웃는 것밖에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 전후 60~70년대 가난하고 비참한 상황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글이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이 이런 경우이리라.
최인호 작가님은 술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아니면 술자리를 좋아하셨거나. 술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나오기 힘든 글처럼 보인다. 술 좀 먹어본 사람, 아니면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단편 ‘술꾼’은 최인호 중단편선 ‘견습환자’(문학동네, 2014)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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