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바람의 열두 방향을 읽고

write5073 2025. 2. 28. 18:39

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K.르귄의 초기 단편선 (2004, 시공사)
 
좋아하는 연예인의 학창 시절 졸업 앨범이나 데뷔 초기 영상을 들여다보듯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르귄의 초기 단편선을 읽어보았다.
 
어슐러K.르귄의 K(Kroeber)는 작가의 아버지 성, 르귄은 남편 성이다. SF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문학가를 그분의 남편 이름으로 기억한다는 사실이 좀 씁쓸하다. (퀴리부인도 퀴리의 부인이었지.)
 
르귄의 작품은 크게 헤인 시리즈, 어스시 시리즈, 서부 해안 연대기로 나눈다. 헤인 시리즈는 우주여행을 하는 미래 인류를 다룬 SF이고 어스시나 서부해안 연대기는 마법을 다룬 판타지 소설이다.
 
<바람의 열두 방향>에는 헤인 연대기나 어스시 시리즈와 세계관이 같거나 토대가 된 작품들이 여러 편 있다.
 
나의 경우 ‘어둠의 왼손’을 읽고 르귄의 문학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이 단편선의 수록작 <겨울의 왕>을 통해 ‘어둠의 왼손’ 이후의 서사를 만나 반갑고 즐거웠다.
 
단편집 제목이 <바람의 열두 방향>인데 서문 앞에 실린 시에서 인용하여 제목을 따온 듯하다.
 
머나먼 곳, 저녁과 아침이
열두 번의 바람이 지나간 하늘을 넘어
나를 만들기 위한 생명의 원형질이
이곳으로 날아오고, 여기에 내가 있네.
-중략-
지금 말해주오, 내가 대답하리니.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말해주오.
내가 바람의 열두 방향으로
끝없는 길을 나서기 전에.
 
<슈롭셔의 젊은이>, A.E.하우스먼
 
이책은 르귄 문학의 원형질을 볼 수 있는 데뷔 초기 10년에 걸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샘레이의 목걸이(1964) - 립반 윙클의 SF버전. O.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도 생각났다.
 
● 파리의 4월(1962) - 르귄에게 첫 원고료를 선사한 작품. 오백 년을 뛰어넘은 브로맨스.
 
● 명인들(1963) - “그 사람은 이 세상과 신 사이의 거리를 재려고 시도했다.” 명인보다는 이단이 되는 길을 선택한 가닐과 미드, 음. 진리에 대한 탐구가 감동을 준다.
 
● 어둠상자(1963) - 상자 안 어둠의 마법으로 타임루프되어 무한 전쟁을 치르는 왕자 이야기.
 
● 해제의 주문. 이름의 법칙(1964) - 어스시의 게드 이전 마법사들의 이야기. 두 이야기 다 매력적이고 놀라운 반전이 있다.
 
● 겨울의 왕(1969) - 겨울행성 카르히데의 기이한 왕위 계승 사건. 등장인물들이 양성이라는 사실은 이 글과 별 관계가 없다지만 권력 다툼과 음모를 일으키는 주체들의 성이 암묵적인 룰에서 벗어나자 이야기는 기묘한 매력을 뿜어댄다.
 
● 멋진 여행(1970) - 마약을 복용한 주인공의 환각을 다룬다. 심리를 따라가는 묘사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 아홉 생명(1969) - 레오나르도 다빈치형으로 태어난 10명의 클론 중 불의의 사고로 유일하게 카프만 살아남았다. 클론 무리 속에서만 살던 카프는 타인과 관계 맺는 데 성공할까. 열등한 육체적 조건을 지녔지만 진정으로 카프를 걱정하는 동료 퓨의 마음을 카프가 받아들이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여기 나오는 클론들은 정신적 유대감이 너무나 깊어 자아가 특별히 구분되지 않는 인물들로 그려졌다. 유전자가 같아도 MBTI는 다를 테니 클론들이 서로를 동일시한다는 설정은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 물건들(1970) - 종말이 가까워 모든 이들이 물건을 버리고 떠나는 섬에 과부와 아기, 벽돌공 리프만 남았다. 리프는 버리기엔 무겁고, 너무 단단하고 불에 타지도 않는 벽돌로 바닷속에 길을 만들어 다른 섬으로 가려고 한다. 벽돌길이 끊어진 바다 가운데 서있는 리프 일행에게 구원의 범선이 다가온다. 왜 이 세계에 종말이 온 건지, 바다를 건너면 살 수 있는지, 섬사람들은 어디로 간 건지 이 소설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르귄의 설명으로 갈음해본다.
“우리가 쓰고 우리가 소유하고 또한 우리를 소유하는 물건들, 벽돌이나 단어처럼 우리가 만드는 물건들 말이다. 우리는 이런 물건들로 집과 마을과 보도를 만든다. 하지만 집과 마을은 파괴되고 보도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세상에는 심연이, 갈라진 틈이, 맨 마지막으로 걸어야 할 걸음이 존재한다.”
 
● 머리로의 여행(1970) - 숲 가장자리에서 어떤 남자가 옆에 있던 이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남자는 자기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남자가 겨우 자기 이름을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이름은 잘못된 거였고 상대방마저 사라졌다. 남자는 상대방을 찾아 숲속으로 뛰어들었으나 그곳에서 남자는 자기가 무얼 찾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줄거리가 의미없는 이야기는 이해를 잘 못하겠다. 자아찾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1971) -  4470세계라 불리는 녹색행성을 탐사하는 탐사단 내에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감정 이입 능력 때문에 자폐증에 빠졌던 오즈딘이 있다. 4470은 하나의 단일 식물로 이루어진 행성이고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행성이 내뿜는 강력한 공포 때문에 탐사단은 위기에 처하는데.
P356
만약 내가 항복한다면. 오즈딘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저것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항복한다는 건, 네가 식물체로부터 받아들인 감정적 정보를 내보내지 않겠다는 뜻이겠지? 매넌이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더 이상 두려움을 뿜어내지 않고 전부 흡수하겠다는 뜻이지? 그랬다간 즉사 아니면 총체적인 심리학적 퇴행 현상, 즉 자폐증상이 재발할지도 몰라.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에 완벽하게 노출된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우리나라는 여론의 과도한 신상털기와 조롱이 수시로 일어난다. 오즈딘이 처한 딜레마가 이해되었다.
 
● 땅속의 별들(1973) - 이단으로 몰려 폐광에 몸을 피한 궤나르. 천문학자가 하늘을 볼 수 없으니 땅속에서 별을 찾아낸다.
P398
수정석 아래로 은광석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아래 곡괭이 끝이 은 원광에, 산산이 부서진 바위 속 깨진 수정 사이로 별과 별 무리처럼 빛나는,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광맥에, 지맥에, 결절에 도달했다. 빛이었다.
 
● 시야(1973) - 외계 유적을 탐사하던 대원들이 유적 가운데 어떤 방에 들어간 후 이상현상을 겪는다. 눈이 부셔서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휴즈와 너무 많은 소리에 들을 수가 없게 된 템스키. 신이 보여준 진리를 받아들인 템스키는 일상의 소리를 찾지만 휴즈는 자살한다. 이후 탐사선이 가져온 서류와 기록들은 우주 하나님의 존재를 인류에게 알린다. 인간이 감각기관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정보나 진리와 대면한다면 어떻게 될까.
 
● 길의 방향(1974) - 떡갈나무가 자동차와 충돌했다. 떡갈나무 입장에서 쓴 소설이다.
 
●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1973) - 작자가 노트에서 밝혔듯 속죄양에 대한 이야기이다. 1974년 휴고상 최우수단편 수상작이기도 하다. 유토피아가 유지되기 위해 누군가 제물이 되고 있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가난한 나라에서 헐값에 하루 종일 축구공을 바느질하거나 커피콩을 따는 노동에 동원되는 아동학대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다. 아이들이 만든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하는 나는 잠깐 분노한 뒤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성원으로 그냥 살아간다. 방탄소년단의 ‘봄날’ 뮤직 비디오가 이 소설을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르귄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소설이 알려지게 되었다. 20대의 나는 오멜라스를 떠나는 이들을 따라가려고 했다. 지금의 나는?
 
● 혁명 전날(1974) - 72세의 라이아가 과거를 회고하며 보내는 하루 이야기. 늙고 병든 자신을 자각하는 묘사에서 황혼기 노년의 허무함이 느껴진다. 화려한 혁명가의 삶이 아니라 “죽음과 노년에 초점을 맞춘 것이 극악하게 현실적(비평가 조지 슬러서)”이어서인지 이 작품은 1974년 네뷸러상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열일곱 편이나 되는 단편은 서둘러 읽기에 양이 좀 많긴 했다. 초창기 소설은 문체가 담백하고 단순해서 읽기 편했지만 뒤로 갈수록 단단하고 강력하고 복잡한 문체와 대면해야 해서 고생했다. 이런 문체들을 번역본으로 읽어야하니 더 힘든 것 같다. 복잡한 세계관을 이해해야 들어오는 유머 코드가 있어서 여러 번 되풀이해 읽은 단편도 있었다. 도장깨기도 아닌데 왜 빨리 읽기에 집착하는 걸까.
 
르귄의 사유를 끌어내는 독창적인 이야기들은 영감을 준다. 첫 원고료를 받은 작품이 르귄이 서른두 살 때 쓴 서른 번째인가 마흔 번째 작품이라고 하니(르귄은 스무 살 무렵부터 투고를 시작했다) 위대한 작가도 긴 습작의 시기를 보내는 것은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가 보다. 죽기 전에 어둠의 왼손이 영화로 나왔으면 좋겠다. 2018년 타계하신 작가도 하늘에서 흐뭇하게 지켜보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