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디스토피아 SF소설 우리들,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마틴(1884-1937)

write5073 2025. 3. 25. 12:07

조지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작품일 것이다. 이 두 소설의 효시 같은 작품이 있다. 바로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마틴의 ‘우리들’이다.
 
출판연도를 보면
우리들 /1921
멋진 신세계 / 1932
1984 / 1949
 
이 세 작품을 3대 디스토피아 SF소설이라고 한다.
 
‘우리들’의 배경은 미래사회다. 이백 년 전쟁 후 살아남은 인류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통제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번호 D-503은 우주선 발사를 책임지는 엔지니어 수학자인데 우주선에 실어 보낼 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를 소개하는 글을 쓴다. 글에서 설명하는 사회는 다음과 같다.
 
번호 : 이름없이 모두 번호로 불린다. 소설 제목이 우리들인 이유는 나, 개인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
제복 : 모든 이들은 ‘유니파’를 입는다.(유니폼에서 나온 말)
만장일치의 날 : 투표일
보안국 : 막강한 권력을 갖는 통치기구로 감시역할.
녹색담벼락 : 인류는 자연과 격리되어 아파트로 이루어진 도시에서만 산다
완전체 : 전 우주를 전체주의 통제사회로 만들기 위해 발사 예정인 우주선
한국가신문 : 이 세계에선 신문이 하나뿐이다.
은혜로운 선생님 : 지도자를 이르는 말
유리 : 모든 건물은 거대한 강화유리로 되어있고, 일상이 공유되며 오직 섹스를 할 때만 허락된 시간에 커튼을 친다.
산책 : 정해진 산책 시간마다 조를 이루어 산책해야 한다.
시간표 : 방마다 스크린 시간표가 떠 있어서 시간표 일정대로 움직여야 한다.
 
섹스도 미리 신청해서 번호표 받은 사람하고만 하는데 주인공은 산책 조였던 I-330에게 한눈에 반한다. I-330의 정체는 혁명 세력의 주모자로 주인공에게 접근해 우주선을 접수하려고 했던 것. I-330을 만나기 위해 규칙을 위반하면서 주인공의 완벽했던 복종의 삶은 균열이 생긴다. 결국 혁명은 실패한다. 정부는 우주선 발사를 앞두고 모든 번호들을 대상으로 세뇌 수술을 실시하는데, 잡혀가서 수술받은 주인공은 그가 아는 것을 모두 고발하고, I-330은 가스종(고문실)에 갇혀 고문받다가 처형 기계 아래로 사라진다. 소설은 통제사회를 찬양하는 D-503의 글로 끝난다.
 
지금은 비슷한 설정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재생산되었기 때문에 새롭지는 않지만 스탈린 치하 소련의 상황을 모델로 백 년 전에 쓴 소설이니까 출판 당시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1920년대의 소련이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했던 사회라면 지금은 어떨까.
정치적 편향과 왜곡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유튜브 영상들, 신문사 사주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게이트키핑, 언론과 여론의 마녀사냥, 경쟁을 부추기고 실패의 결과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집단 무의식, 소수 카르텔의 거악에는 관대하고 잡범들을 사회악으로 과대 포장하는 저녁 뉴스.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지 않으면 2025년의 우리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세뇌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슐러 르귄의 책을 읽다가 자마틴이라는 소설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자마틴은 스탈린 치하소련에서 반체제, 반혁명 작가로 낙인이 찍혀 작가로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파리로 망명했지만 글을 쓰지 못하고 가난과 병마에 시달려 죽게 된다.
 
진정한 문학은 성실하고 믿음직한 관리가 아니라 미친 사람, 은둔자, 이단자, 몽상가, 반역자, 회의론자에게서 나온다..... ...
해로운 문학이 유익한 문학보다 훨씬 유익하다. 문학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철학적으로 드넓은 지평이다. 가장 궁극적이고 가장 무섭고 가장 용감하게 “왜”그리고 “다음은 뭔가?”를 묻는 거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주류였던 소련에서 가장 투명하고 선명하게 문학의 의의를 외쳤던 자마틴의 일갈은 자본주의 사회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에 놓인 작가들에게 아직도 유효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