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스티브 잡스.

write5073 2025. 9. 22. 01:08

스티브 잡스

지은이 월터 아이작슨, 민음사(2011)

읽은 기간 : 2025. 9. 4 ~ 9. 19

 

이 책은 스티브 잡스의 전기다.

전기지만 스티브 잡스를 미화하지도, 악마화하지도 않았다. 인터뷰한 사람들의 육성을 편집해서 실었고 스티브 잡스를 어떤 인물로 평가할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목차도 잘 짰다. 목차와 소제목만 보아도 스티브 잡스의 면모와 일생이 한 눈에 보인다. 소설처럼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전개, 깔끔하면서 읽기 쉬운 문체 덕분에 구백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이 나에게는 완벽한 타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땐 아주 잘 알던 사람의 죽음을 접하듯 뭉클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문학적 성취까지 이룬 좋은 작품이기에 전 세계적으로 밀리언셀러가 되었나 보다. 회사의 사내 정치를 다룬 부분에서는 굳이 이런 것까지 시시콜콜 다루나 싶기도 했는데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울지도 모른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창업자이며 아이폰을 만든 사람이다. 1955년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고, 스무 살 무렵에는 히피로, LSD와 선불교에 심취한 날을 보냈다. 디지털 혁명의 주역이 되어 인류사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긴 그는 2011년 56세에 췌장암 전이로 세상을 떠났다.

 

p87

콧키는 잡스의 종교적 탐구가 부분적으로는 친부모를 모른다는 사실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한다. “마음에 구멍이 뚫려 있어 그걸 메우려고 애썼던 겁니다.”

-콧키(대학 친구, 애플 엔지니어)

 

p26

“스티브에 대한 중요한 의문 한 가지는 그가 왜 때때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일부 사람들에게 거의 반사적으로 잔인하고 사악하게 구느냐 하는 겁니다.”

“출생 직후 버림받은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진짜 근본적인 문제는 스티브의 인생에서 ‘버림받음’이라는 주제가 차지하는 비중이라는 얘깁니다.”

-앤디 허츠펠드(애플의 엔지니어)

 

잡스의 양부모는 서민이었고 학벌도 좋지 못했다. 그러나 잡스 부부는 금슬이 좋았고 성품이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양아버지 폴 잡스는 집 차고에서 잡스에게 전기공학의 기초와 장인정신을 가르쳐준 잡스의 스승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잡스는 악동이었고, 사고치는 청소년기를 보냈음에도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스티브 잡스는 초등학생 때 이미 자신이 부모님보다 똑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잡스 부부는 잡스를 두려워하거나 억누르려고 하지 않았다.

 

P35

“부모님 모두 저를 이해해 주셨어요. 제가 특별하다는 것을 아시고 나서는 많은 책임감을 느끼셨지요. 제게 계속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게 조치하고 더 나은 학교에 보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셨어요.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주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하신 겁니다.”

 

미성년임에도 마약에 동거까지 하고, 반항심으로 학비가 매우 비싼 대학을 고집하는 등, 아들이 이미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났음을 알지만 아들이 잘못할 때는 타협 없이 호통을 치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발 벗고 나서며, 뒷바라지했던 양부모의 사랑은 생물학적 부모의 사랑이 더 우위일 거라는 편견을 무색하게 만든다. 양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잡스는 어머니 클라라 잡스가 임종할 때까지 일부러 친모를 찾아 않았다고 한다. 잡스는 성공한 뒤 부모님에게 약 75만 달러어치 주식을 전달했는데 검소한 부부는 그 돈의 일부로 집의 대출금을 갚고 일 년에 한 번 크루즈 여행을 다닌 것으로 충분히 행복해했다고 한다. 그들이 잡스에게 겸손함을 가르치는 데는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잡스가 자신의 천재성을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인류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것은 선하고 바른 부모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잡스는 머리가 좋아 월반했지만 새로 간 중학교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린다. 결국 우수하고 안전한 지역으로 무리해서 이사를 가게 되는데, 이게 잡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새집은 기계 장치들을 조립하고 분해하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차고가 있었고, 실리콘벨리에 위치해 있었다. 학군이 좋은 동네이다 보니 좋은 고등학교에서 고급 수업을 받고 스티브 워즈(애플의 공동 창업자, 엔지니어)같은 천재도 만날 수 있었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알코올 중독자 가족에게 입양되어 학대받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컸다면 그의 천재성과 카리스마가 어떻게 발현되었을까. 나는 환경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정서적, 경제적으로 버팀목이 되는 양육자와 재능을 꽃피우게 하는 동인, 예를 들어 스승과 친구, 적절한 교육, 현실에 안주하지 않게 하는 긴장감 있는 환경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발아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잡스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부모가 가난하지만 훌륭한 사람들이었고, 부인 로렌 파월도 멋진 여성이었던 것 같다.

 

P849

현명하고 인정많은 로렌 파월은 상대를 안정시키는 힘이 있었다. 어찌 보면 그녀는 의지가 강하고 분별력이 있는 사람들을 주위에 둠으로써 자신의 이기적인 성향을 보완하는 잡스의 능력을 입증하는 증거라 할 수도 있었다.

 

잡스의 세 번째 연인이었던 티나 레지는 잡스가 자기애성 인격 장애의 문제가 있는, 즉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직원들의 성과물을 쓰레기라고 폄하하고, 더 나은 성과를 얻기 위해 무시무시하게 몰아붙이는 잡스의 악마성은 그런 병증 탓일지도 모른다. 이런 증상은 보통 자신과 주변을 파멸시키는데 잡스는 욕을 먹을지언정 인류사에 공헌했으니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게 된다.

 

P850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많은 위인들이 그렇듯이 그도 모든 영역에서 비범하진 않아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거나 하는 사회적 배려는 없어요. 그 대신 인류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일이나 인류의 진보, 인간의 손에 훌륭한 도구를 들려주는 일에 깊이 관심을 쏟죠. 

 

P881

내 열정의 대상은 사람들이 동기에 충만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윤을 내는 것도 좋았다. 그래야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윤이 아니라 제품이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스컬리는 이러한 우선순위를 뒤집어 돈 버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미세한 차이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어떤 사람들을 고용하는가, 누구를 승진시키는가, 미팅에서 무엇을 논의하는가 등등 모든 것을 결정한다.

 

P886

내게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창의적인 사람들은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고마움을 표한다. 나는 지금 사용하는 언어나 수학을 고안하지 않았다. 내가 먹는 음식을 직접 만드는 일도 거의 없으며 내가 입는 옷도 직접 만들지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노고와 우리가 올라설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준 사람들의 성과에 의존한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 역시 인류에게 무언가 기여하기를, 그러한 흐름에 무언가 추가하기를 바란다. 이것의 본질은 우리가 각자 알고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전 시대에 이루어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나를 이끌어 준 원동력이다.

 

잡스가 심혈을 기울인 매킨토시의 시장 판매율이 저조한 성적을 내자 잡스는 회사 사람들을 심하게 갈군다. 보다 못한 이사회는 잡스가 영입한 스컬리에게 잡스를 내보내도록 한다. 잡스는 자기가 만든 애플에서 쫓겨난 것이다. 애플을 떠난 잡스는 넥스트라는 컴퓨터 회사와 픽사를 설립하고 토이 스토리를 비롯한 만화영화들을 히트시켜 부와 명성을 얻는다. 그리고 약 십 년 후 혁신이 사라져 망하기 일보 직전인 애플에 임시 CEO가 되어 복귀한다. 아이맥, 아이팟, 아이튠스 스토어,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 스토어 등 혁신 제품을 잇달아 히트시켜면서 애플을 세계 최고의 회사로 부활시킨다.

 

완벽주의자였고 목표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강한 사람답게 인생어록을 많이 남겼다.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다.

여정자체가 보상이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붙잡고 싶습니까? (1984년 펙시 CEO였던 존 스컬리를 애플 CEO로 영입하면서)

 

p532

잡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제대로 집중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었다.

“하지 말아야할 일을 판단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이것은 회사 차원에서도, 제품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p571

저는 A급 선수들은 A급 선수들과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들은 단지 C급 선수들과 일하는 걸 싫어할 뿐이지요. 픽사는 온전히 A급 선수들로만 이루어진 회사였습니다. 애플로 복귀하면서 저는 그걸 다시 시도해 보기로 작정했어요.

 

p600

그는 왜 사람들이 서른만 넘어가면 완고한 사고방식에 빠지고 혁신적인 성향이 줄어드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사람들은 일정한 패턴 속에 갇히는 겁니다. 레코드판의 홈과 같은 그런 패턴 말입니다. 그들은 결코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물론 선천적으로 호기심이 왕성해서 평생 어린아이 같은 사람도 있지만 결코 흔치 않지요”

 

영원한 삶을 바라는 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는 본능과도 같다. 개체는 소멸할지언정 후손을 남겨 유전자를 보존하려고 한다. 비단 개체뿐이겠는가. 인류는 문화 또한 유전시켜 왔다. 잡스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그의 유산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죽음을 앞둔 잡스는 보통의 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알려주고 싶어 했다. 

 

P867

“우리 아이들이 나에 대해 알았으면 했어요.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항상 곁에 있어 주진 못했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 이유를 알기를, 내가 무엇을 했는지 이해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까 내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한 책을 쓸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들이 뭘 알겠습니까? 제대로 된 책이 나올 수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직접 내 얘기를 들려주어야겠다 싶었지요.”

 

나는 스티브 잡스가 타인에게 자신의 일생 전반을 숨김없이 보여줄 만큼,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당당한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부와 명예를 지닌 사람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일탈 없이 가족을 지키고 충실했다는 점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잘 몰랐던 스티브 잡스의 삶을 통해 순수한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스티브 잡스처럼 재능있는 악마 같은 사람도, 폴 잡스처럼 소박하고 성실한 사람도 서로를 보완하며 기대고 함께 만들어 가니까 세상이 굴러가는 것이라는 걸 알겠다.